경복궁 자선당 일본으로 가져가기 전모습 > 사진자료실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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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자선당 일본으로 가져가기 전모습 > 사진자료실 - 한국

[궁궐+관아] 경복궁 자선당 일본으로 가져가기 전모습

김영재 2004-04-19 (월) 23:10 15년전 1474




일본으로 가져간 자선당은 지금은 기단만 우리에게 돌아왔읍니다!
향원정 뒷편에 있는데...

「동국여지승람」 제1권 경도에 보면 '자선당은 융문루 남쪽에 있는데 동궁이 서연(書筵)으로 쓰는 곳이다' 하여 임진왜란 전후의 위치가 달랐던 것으로 보여진다. 「북궐도형」에는 자선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합 28칸이고 중앙부 6칸은 대청, 좌.우 2칸씩은 온돌방이며 둘레의 툇간은 방, 퇴로 구성되었다.

자선당은 세자와 세자빈의 침전이며 동궁전이라고도 부른다. 자선(資善)이란 "착한 성품을 기른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9년(1427)에 자선당을 짓기 시작했다. 자선당은 문종이 세자로 책봉된 뒤 1450년 2월 즉위하기 전까지 20여년간 머물던 곳이기도 하며, 1441년 7월 단종이 이곳에서 탄생하기도 한다.

또한 이때 세자빈 권씨가 단종을 낳은 뒤 이곳에서 승하하기도 한다. 자선당은 이후 몇 차례 소실을 거친 뒤 임진왜란 때 완전 소실되어 고종 4년(1867)에 이르러 다시 재건된다.

그러던중 1915년 일제가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앞두고, 박람회를 개최한다는 핑계로 1914년 동궁 일대를 완전히 철거한다.

이때 자선당은 경복궁 철거업무를 맡아보던 일본인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에 의해 일본으로 빼돌려져 '조선관(朝鮮館)' 간판을 달아 미술관으로 쓰였으나,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불타 없어지고 기단석만 남는 비운을 맞게 된다.

이후 자선당 기단석은 오쿠라호텔 경내에 방치되어오다가, 1996년 반환되어 현재 경복궁 명성황후 시해터 부근에 옮겨 놓았다.

한편 현재의 자선당은 1999년 12월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정면 7간 측면 4간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자선당 현판 글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 기능보유자인 철재 오옥진 선생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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