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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해외공관에 관한 연구

한동수 2010-01-17 (일) 09:50 10년전 2448  
우리나라의 근대건축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당시의 해외 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김정동 교수님이 일부 추적을 하여 밝혀낸 바가 있으나 단순히 뉴스거리의 수준이 아니라 좀 더 체계적인 학술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일본국립국회도서관의 자료에서 동경의 조선공사관 사진이 한 장 공개되었는데 이것을 추적한 일본블로그를 보게 되었고 일본 동경대학에 유학중인 서동쳔군에게 부탁을 하여 현장 답사를 한 자료를 보았습니다. 궁금한 것이 한 둘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의문점을 해소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연구는 해당지역에 유학 중인 학생들이나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각자 자신이 있는 지역에서 하나씩 맡아 준다면 좋은 책으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우리나라 외교부의 문서를 검토하여 당시 해외공관이 설치되어 건물을 유지했던 지역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겠지요. 중국 북경의 경우는 어느 정도 밝혀진 사실이 있고 부분적으로 이를 다룬 논문도 나와 있으나 여전히 미진합니다. 꼭 어느 특정분야의 연구자가 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 모두가 조금씩 사명감을 가지고 정리를 한다면 시대를 읽는 건강한 학문의 결실이 되리라고 여겨집니다. 모두의 관심과 분발을 기대합니다.

한동수 2010-01-17 (일) 09:54 10년전
이와 더불어 제가 최근에 관심을 갖고 찾아 보았던 것이 조선은행의 해외 지점들입니다. 사진은 여러장 찾아 사진자료실에 올려 두었는데 나카무라 요시헤이의 작품이 많더군요. 그리고 얼마전에는 청도를 가는 길에 청도에 있던 조선은행 청도지점을 보고 왔습니다. 저는 근대 건축의 전공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근대건축을 연구하는 공간과 시간의 영역이 확대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조선반도, 일본열도, 만주, 중국, 러시아 등 당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공간을 아우르는 연구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너무 얽매여 있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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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2010-01-18 (월) 21:00 10년전
나까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한 조선은행은 중국지역에는 대련, 봉천, 장춘 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부산, 대구, 군산, 나남에 있습니다. 일본에는 오사카에 지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많은 조선은행 지점들을 설계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자서전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945頃「自伝」『浜松が生んだ名建築家 中村與資平』참고.
그것은 타케야마 준페이[은행가 타케야마 켄조의 양자]와의 관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나까무라는 하마마츠현 같은 고향사람이고, 8살연상인 타케야마 쥰페이와 매우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나까무라의 부인은 타케야마의 와이프의 동생이었습니다. 나까무라가 건축과를 갈 수 있도록 결정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타케야마의 아들[타케야마 켄자부로] 또한, 나까무라를 롤모델로서 동경대 건축과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타케야마 켄자부로는 가스미가세키 빌딩의 구조설계를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밀접한 관계는 동경대 건축과에서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타츠노가 운영했던 타츠노 카사이 사무소에 들어가서 첫번째 메인 아키텍트로 맡었던 작업이 제일은행 경성지점의 설계와 맞물려 집니다.
타츠노 사무소에서 제일 은행 한국총지점[1909년에는 한국은행으로 개명, 1912년 식민지 시기에 조선은행으로 다시 개명]의 설계를 맡게 되어, 자신이 그 설계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타츠노사무소가 설계를 맡은 것은, 아마도, 나까무라선생의 같은 고향 사람인 타케야마 쥰페이가 제일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 관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타츠노 긴고 선생이 의도적으로 나까무라에게 건설감리까지 전권을 위임했던 것입니다. 나까무라 자신도 타케야마 쥰페이 형이 제일은행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설계를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그의 자서전에서 말할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나까무라는 조선은행[1912]을 완공한 후에 은행으로부터 5000엔의 보너스를 받고 조선은행의 건축고문이 됩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남산기슭 5000평부지 위에 자신의 저택을 짓고 경성에 사무실을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타케야마의 조언도 영향이 있었으며, 러일/일러 전쟁이후에 건축수요가 폭발적으로 대륙지역에 증가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1917년에는 사무소를 중국 대련까지 확장을 합니다. 또한 중국쪽 일이 많을 때에는 안톤펠러와 이와사키[그의 오른팔] 등이 대련사무실에 상주해서 설계를 담당하기도합니다.
그리고, 타케야마가 경성에 상주에 있을 시기까지 조선은행지점들에 대한 많은 설계를 담당하게 됩니다.

1921년에 대련과 경성에 있는 사무실을 접고 구미여행을 결심을 합니다. 자서전에서는 노부모를 공양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고 했지만, 야스히코 니시자와씨의 논문에서는 안톤펠러가 실수로 경성사무실을 전소시키면서 이를 계기로 사무실을 접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무소가 전소되었음에도 태평로쪽에 다시 개설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생각이 맞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다른 학자는 타케야마가 경성에서 동경 제일은행 본점으로 돌아가면서 사업을 접기로 결심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한국과 중국지역의 사회적 불안을 말하기도 합니다. 안톤펠러와 구미여행을 한후에 그와 함께 일본 동경에 사무실을 새로 개설합니다. 그러나, 펠러의 임금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그를 레이몬드사무실로 소개를 시켜주었답니다. 그 이후에 펠러는 쉰들러, 라이트 사무실에서 일을 했고, 뉴저지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말년에는 철재를 이용한 조립식 주거에 몰두합니다.

나까무라 요시헤이는 주거나 도시계획쪽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1924년부터는 시모다 우타코下田歌子선생님의 의뢰에 의해 짓센여자 전문학교 実践女子大学 주거론을 강의하고, 나중에 주거론이라는 책을 출판합니다. 참고로, 시모다 우타코는 일본의 근대 가정학의 개척자로서 매우 유명한 분입니다. 짓센여자대학도 이분이 설립한 것입니다.

http://www.jissen.ac.jp/library/shimoda/index.htm

그리고, 동시에 도시계획에 관심을 갖고 몇 개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1862년에 런던에서 개정 출판된 윌리엄 챔버의 “A TREATISE ON THE DECORATIVE PART OF CIVILARCHITECTURE”를 번역합니다. 초판(1917)에는 타이틀이[미술적 건축]이었는데, 1931년 수정판에서는 [양품건축 설계자의 비법을 적은 책]라는 제목으로 출판을 합니다.

1917年『美術的建築』(翻訳)東京書院 
1931 『洋風建築設計者の虎の巻』鈴木書店 (『美術的建築』の改題改訂版)

나까무라 이 분의 사상과 건축은 그의 스승 다쯔노와는 달리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으며, 반대로 일본화된 건축방식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즉, 이토츄타가 권장햇던 절충주의와 이토가 경계했던 신양식[세제션] 모두를 그의 설계 받아들렸다는 점에서 정말 매력적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까무라 요시헤이 건축에 묶인 것이 6년이 지나갑니다. 이 논문은 어떻게든 조만간에 결론을 낼려고 합니다.
현재 정리가 마무리중에 있습니다. 조만간에 파일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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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수 2010-01-18 (월) 23:08 10년전
영재의 글 잘 보았네. 항상 내가올린 자료에 대하여 심층적이고 깊이 생각해 보는 친구가 있다는 기대감이 나를 즐겁게 하는군. 영재의 논리에 내가 어떻게 대응을 할 수 있겠나. 그저 난 이런 연구가 왜 진행되지 않는지 안타까울 뿐이지. 누가 뭐라고 해도 나의 주된 관심과 최종 목표는 나의 스승 박학재 교수님의 노력에 필적하는 동양건축사정론을 쓰는 것이지. 물론 요원한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아니면 어떤가. 뒤를 이어갈 후학들이 있기만 하다면...하루 빨리 영재가 축적한 학문의 논리를 들으며 밤새워 이야기를 하고 싶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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