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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와 『화한삼재도회』

한동수 2009-05-27 (수) 07:21 11년전 1878  
김 문 식(단국대 사학과 교수)


18세기 후반의 학자였던 이덕무는 일본에 관한 정보를 종합 정리한 『청령국지(國志)』를 편찬했다. 1471년(성종 2)에 신숙주가 유사한 성격의 『해동제국기』를 편찬하고 삼백년이 지나서야 조선인이 편찬한 일본 소개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덕무의 『청령국지』에는 일본과 무역을 하던 국가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아란타(阿蘭陀) 즉 네덜란드도 들어 있다.


일본에서 도입된 『화한삼재도회』를 통해 네덜란드에 관한 정보를
이덕무는 아란타는 서북쪽 끝의 가장 추운 곳에 있는 나라로서 남만(南蠻)을 구성하는 7개 대주(大州) 가운데 하나이고, 사람들의 살갗은 희고 머리털은 붉으며 코가 높고 눈은 둥글다고 했다. 또한 아란타는 자카르타에 무역 거점을 두고 세계 36개국과 무역을 하는데, 해마다 6~7월이 되면 산호, 호박, 안경, 나침반, 시계와 같은 진귀한 물건을 배에 잔뜩 싣고 일본의 나가사키[長岐]로 와서 무역을 한다고 했다. 이덕무는 나가사키에는 아란타 이외에도 타이, 인도지나, 타이완, 중국의 배가 와서 무역을 하는데, 일본은 조선 인삼을 자기네 토산품이라 속이면서 아란타 상인에게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고도 했다. 여기에는 조금 우스운 이야기도 있는데, 아란타 사람들은 항상 개처럼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덕무는 서적이나 전문(傳聞)을 통해 정보를 모았으며, 아란타에 대한 정보는 주로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라는 책을 참고했다. 『화한삼재도회』는 1713년에 일본의 한방 의사였던 데라지마 료안(寺島良安, 이름은 尙順)이 편찬한 105권의 방대한 유서(類書)를 말하는데, 이는 1607년에 명나라 왕기(王圻)가 편찬한 『삼재도회』 106권의 체제와 정보를 바탕으로 하면서 일본에 관한 정보를 중심으로 다시 편찬한 책이다. 이 책에서 아란타에 관한 정보는 ‘외이인물(外夷人物)’에 나오며, 『청령국지』에 나오는 아란타 이야기는 모두 여기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덕무가 『화한삼재도회』를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동료였던 원중거와 성대중을 통해서였다. 원중거와 성대중은 1763~1764년에 통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을 다녀왔는데, 이덕무에게 자신들이 일본에서 목격한 바를 들려주고 구입해 온 서적들을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이덕무와 원중거, 성대중 사이에는 각자가 획득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교유권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덕무는 여기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청령국지』를 편찬할 수가 있었다.
『화한삼재도회』가 조선 학계에 끼친 영향은 이덕무로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의 이름은 1748년에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조명채가 작성한 『봉사일본시견문록』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1764년에 통신사가 가져온 『화한삼재도회』는 이들과 교유하던 주변 인물들에게 확산되어, 유득공의 필기(筆記),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한치윤의 『해동역사』, 성해응의 『연경재총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 참고문헌으로 인용되기에 이른다. 당시 조선 학계에는 외부 세계에서 들어온 방대한 정보들을 집성하여 주제에 따라 분류한 유서의 편찬이 유행했는데, 일본에서 도입된 『화한삼재도회』는 새롭고도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했다.


우리 학계가 일본 정보의 영향에 대해 소홀했다는 느낌
현재 국내에 있는 『화한삼재도회』는 일본에서 간행된 목판본으로, 1713년 간본과 1772년 간본 두 종류가 있다. 이 중에서 원중거와 성대중 일행이 구입한 것은 1713년 간본으로 보이며, 1772년 간본은 통신사의 방문과는 별도로 대마도에서 동래를 거쳐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의 도입 과정에 대해서는 추적이 필요하다.
조선후기의 지식인이 외부 세계와 공식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경로는 연행사 코스와 통신사 코스가 있었다. 그동안 우리 학계는 연행사 코스를 통해 들어온 학문 정보, 이를테면 고증학의 영향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했지만, 통신사 코스를 통해 유입된 일본 정보의 영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덕무를 비롯한 당대의 대표적 학자들이 『화한삼재도회』를 참고한 것을 보면, 이러한 학계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 김문식

·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 저서 : 『조선후기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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